2015년 9월 16일 수요일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 매트 타이비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 10점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열린책들
부자라서 처벌을 면하고 가난해서 감옥에 간다는 설명은 너무나 단세포적이다.
답은 훨씬 복잡하다.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워싱턴 포스트」, 「NPR」, 『커커스 리뷰』 올해의 책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월스트리트 금융 기업들과 관료들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아끼지 않기로 정평이 난 <롤링스톤>의 기자 맷 타이비의 신작이다. 그는 골드먼삭스를 “인류에게 들러붙은 흡혈 오징어”로 표현한 것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타이비는 조직적인 사기로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한 금융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아무 처벌을 받지 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이 경미한 질서 교란 행위 때문에 감옥에 가는 현실을 대비시킨다. 즉, 부의 양극화가 집어삼킨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해부한다. 최근 흑인에 대한 과잉진압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사법 불평등은 해묵은 숙제 중 하나인데, 타이비는 미국 사회가 가난을 죄악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처벌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이 책이 그리는 것은 경제 논리에 잠식된 사법 시스템과 그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 미국 사회다.

눈먼 정의의 디스토피아

타이비의 논지에 따르면 현대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경제 논리에 따라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법치주의는 서서히 퇴색되어 가고, 그 대신에 실패한 자,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강한 자, 부유한 자, 성공한 자의 위법 행위를 눈감아 주는 방향으로 설계된 특이하고 거대한 관료주의가 서서히 강화되어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책에는 <부수적 결과>라는 다소 생소한 말이 나온다. 이것은 현 미국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작성한 회람문에 등장한 문구다. 그리고 현재 미국 법무부가 대형 금융 회사를 형사 기소를 하거나 형사 처분을 할 경우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아예 기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때 쓰는 말이다. 이제는 사법 시스템에서조차 경제성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범죄를 벌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 긴요한 문제다. 이 논리에 따라 돈과 인맥의 비호를 받는 금융 권력의 범죄를 단죄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첫째,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둘째, 그럼에도 실패할 확률이 지극히 높으므로 비효율적인 일이 된다. 반대로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도 백도 없는 사람들의 범죄는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쉽게 심판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이다. 경제성 논리가 심화되면서 미국의 사법 정의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죄를 찾는 일은 아예 그만두고,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온갖 시시한 위법 행위―이를테면 담배꽁초 투척이나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행위 따위―를 적발해 지엄한 법의 철퇴를 가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방향 선회를 마쳤다. 타이비는 나아가 이것이 단순히 시스템 문제에 그치지 않음을 지적한다.

정부의 복지 급여에 의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 47퍼센트를 공격하는 미트 롬니의 발언, 그리고 물을 져 나르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경멸감 밑에는 국민 심리에 뿌리내린 거대한 지상명제가 자리 잡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가난을 자체로 범죄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한때 가난한 이들의 울분을 상징하는 문구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 문구를 잊지는 않았지만, 예전 만큼의 분노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는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격렬한 증오가,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비굴한 숭배가 넘쳐난다.

타이비는 이 현상의 원인을 “관료제”에서 찾고 있다. 그는 통제받지 않는 사법 시스템이 “갈수록 미친 말처럼 날뛰”면서 “새로운 진리”가 통하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새로운 진리는 공상과학 영화이자 디스토피아다. ……관료제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약자들을 쥐어짜서 더 작고 더 온순하고 더 열등한 종으로 만들고, 강자들의 근육을 키워 주어서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덩치에 웬만한 공격은 가볍게 물리치는 슈퍼맨으로 만든다.
이 세계에서 무일푼인 사람은 그야말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돈이 넘쳐나는 사람은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조지 오웰이 그렸던 디스토피아에서는 <생각 범죄>가 원죄였다. 그러나 새로운 기업형 디스토피아에서는 궁핍, 특히 경제적 궁핍이 원죄다.

누가 감옥에 가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제시한다.

빈곤이 심해진다. 범죄는 줄어든다. 수감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난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지난 20년간의 몇 가지 통계는 이 논리적 모순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첫째, 폭력 범죄가 줄어들었다. 1991년에 10만 명당 758건이었던 폭력 범죄는 2010년 425명으로 44% 넘게 감소했다. 이런 감소 추세는 살인, 폭행, 강간, 무장 강도 등 모든 형태의 강력 범죄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강력 범죄율이 줄어든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지금도 여전히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누구나 공감하듯이 빈곤이 더욱 심화되었다. 1990년대에는 빈곤률이 감소했고, 이는 폭력 범죄의 감소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2000년대 초 빈곤율은 10퍼센트 언저리를 맴돌았는데 2008년에는 13.2퍼센트로 치솟았고, 2009년에는 14.3퍼센트, 2010년에는 15.3퍼센트를 기록했다. 셋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1년과 비교하면 2012년의 수감 인구는 100% 넘게 증가했다. 현재 미국의 가석방 혹은 수감 중인 인구(거의 600만에 달한다)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다.
수감자 비율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12.6%를 차지하는 흑인은 전체 수감자의 38.2%를 차지한다(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비율은 43.5%까지 치솟아 100만 명을 넘겼다). 반면 인구의 56.1%인 백인은 수감자의 34.2%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비율을 감안할 때 흑인의 수감율은 백인에 비해 6~7배 높다. 한마디로 흑인 청소년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보다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 히스패닉계는 백인에 비해 대략 3배 높은 수감율을 보였다.

왜 감옥에 가는가

사례를 보자. 26세의 노숙자 토리 매런은 강화된 불심 검문 정책 탓에 수감형을 받는다. 2011년 뉴욕에서 행해진 불심 검문은 68만 4,724건에 달했고 이 중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것이 88%였다. 2012년에 대마초 소지(뉴욕 주 법에 따르면 대마초 소지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검문 과정에서 대마초를 공중에 노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즉 검문을 당하면 영락없이 소환장을 받게 된다) 등의 사소한 위법 행위에 대해 발부된 소환장은 60만 건이었다. 이는 사소한 위법 행위를 철저히 근절하는 것이 강력 범죄 억지에 효과가 있다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줄어드는 경찰 급여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마치 잔챙이 고기들까지 싸그리 잡아들여 수익을 올리는 기업형 어업 행위와 비슷하다. 사법 시스템 또한 이런 식의 어로 행위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개편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관료제”다.
앤드루 브라운은 뉴욕 빈민가 출신의 흑인으로 범죄를 저지르던 10대 시절을 청산하고 근면하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그가 사는 빈민가는 경찰들 수천 명에게 완전히 둘러싸인다. 그는 수차례 “보행자 통행 방해” 혐의로 체포되어 소환장을 받는다. 간단히 말해서 집 앞 인도에 (걷지 않고) 서 있었다는 이유로 거듭 체포된다. 문제는 억지든 뭐든 이런 식으로 소환장을 발부하면 도무지 빠져 나갈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추방된 불법 이민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겼다(2000년부터 2010년까지의 총 추방자가 16만 명이었다). 정책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민자 추방 시스템, 즉 적발하고, 구급하고, 추방하는 각 단계도 경제 논리에 지배당하는 것이 문제다. 이 모든 정책이 불법 이민자들의 푼돈을 갈취하는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미 당국은 이민자들을 헐값으로 노동 집약 산업에 투입하다가 무면허 운전(불법 이민자는 면허 취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등을 적발해서 벌금을 뜯어내고, 폭리를 취하는 구금 시설에 가뒀다가 멕시코 등으로 추방시킨다. 이후 이들은 대개 멕시코 갱단에 납치되어 몸값을 뜯긴 후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진다. 이 사이클이 무한히 반복된다.
좀 더 기막힌 사례는 사회 복지 부정 수급을 이유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본인 명의의 자산이 2천 달러 이하여야만 수급 자격이 있다. 즉, 가진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해야 한다. 복지 부조는 현금 부조와 식료품 구입 쿠폰으로 지급되는데, 일단 수급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나 취급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일단 수급 대상자가 되면 언제 범죄자 신세가 될지 알 수 없다. 캘리포니아 주 복지 수급 신청에 대해 타이비가 제시한 설명을 보자.

(신청서에는) 복지 수급 전 과정이 요약되어 있고 허위 신고의 결과에 대한 장문의 글이 들어 있다. <본인이 신청서에 쓰는 모든 내용이 진실임을 입증할 의무가 있고, 현금 지원과 관련해서 허위 신고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식품비 보조 쿠폰과 관련해서 허위 신고를 하면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고지도 있다(은행을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저지른 사기 사건들과 비교해 보면, 사기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적을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수급 자격은 매달 다시 심사하는데 매번 다른 복지사가 담당한다. 이전 복지사가 수급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더라도 이후 다른 복지사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오하이오 주는 2011년 복지 급여나 식품비 보조 쿠폰의 <과다 지급> 사례를 찾아내 주민들에게 2만 2천 건의 환수 통지서를 보낸바 있다. 과다 지급액이 4백 달러 이상일 경우 주 정부는 수급자를 사기죄로 고발할 수도 있다.
벌받는 자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경미한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놀라울 정도로 가혹하다는 것이다. 이들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가난이 가중 처벌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누가 감옥에 가지 않는가

반면, 타이비는 지난 2008년 이후로 전 세계 부의 40퍼센트를 날려 버린 금융계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의 대가로 감옥에 수감된 금융 회사 고위 임원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음을 적시한다. 리먼브라더스 인수에서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50억 달러를 은닉/갈취한 리먼브라더스 전 임원들과 바클레이스 임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견실한 보험사 페어팩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대리인을 고용해 거의 4년에 걸쳐 조직적인 공매도를 펼치고, 언론 조작을 하고, 온갖 비열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던 헤지펀드들 역시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 엉터리 대출 심사와 로보사이닝 기법을 사용해 부실 대출을 하고 이 채권을 유통시켜 금융 위기를 일으킨 금융 회사들 역시 과징금을 물기는 했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정부에 총 260억 달러의 손실을 배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260억 달러의 금융 사기를 수감형이 필요한 중범죄로 다루지 않았다. 어느 카운티에서는 복지 급여 몇백 달러를 부정 수급한 자를 잡겠다고 해마다 2만 6천 가구를 수색하고 있는데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타이비는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든, 다른 측면에서 보든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이냐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이런 방침을 밀어붙이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약자들을 옭아매는 데 있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두 개의 미국>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이런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이 완전히 다르고 징벌(또는 징벌 면제)의 수위도 완전히 다르다. 부자들은 늘 특혜를 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새로운 진리는 기존의 진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사악하고 훨씬 일그러져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타이비는 온전치 못한 사법 정의가 시스템이, 고착화된 제도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즉, “관료제”가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 관료제의 암울안 현재를 타이비는 이렇게 묘사한다.

만일 당신이 거주하는 주나 워싱턴 주의 아주 사소한 법규 하나라도 바꾸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 수천 명의 로비스트를 동원해야 한다.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지만, 성공하기까지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루한 법정 싸움과 무의미한 탁상공론이 이어지는 법규 제정 절차에 10여 년을 바쳐야 하고, 게다가 수만, 수십만 페이지의 반박 문서와 의견서, 정책 문서와 씨름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 절차들은 모두 인간의 결정에는 반응하는 법이 없고 오로지 관료 조직의 움직임에만 반응하는 공장식 체계가 기계적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따라서 관료제 안으로 빨려들어간 사법 시스템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관료주의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강력한 원칙이다. 개인, 더구나 돈이 넉넉하지 않은 개인은 이런 면에서 애당초 불리하다. 따라서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게임이 아니다.

흔히들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관료제라면 틀림없이 부유한 개인에게 우호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관료제는 사람들을 덫에 빠뜨려 패자를 만들고 그들에게 벌칙을 안기는 일에만 몰두하고, 패자들은 갈수록 수적으로 줄어드는 승자 계층에 깔린 채 목숨을 부지해야 하지만, 승자들 역시 그 자리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

결국 이 미친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든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에 늘 시달리게 된다. 타이비의 책은 한국 사회가 이 디스토피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