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화

사회학의 쓸모 - 10점
지그문트 바우만.미켈 H. 야콥슨.키스 테스터 지음, 노명우 옮김/서해문집

"현재 유럽 사상의 최고봉” 지그문트 바우만을
사회학자 노명우의 번역으로 만난다!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대학과 학문은 무력할 뿐이다.
지식인이 마주하는 남루한 현실. 이제 사회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이자 “현재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진면목을 사회학자 노명우(≪세상물정의 사회학≫ 저자)의 번역으로 만난다. 이 책은 이제까지 한국에서 출간된 바우만의 다른 저서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갖는다. ‘사회학’은 과연 어떤 학문이며 왜 필요한지, 사회학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결국 사회학이 인간 사회에 쓸모가 있으려면 사회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고도 담담한 어조로 고백하는, (아마도 그의 유일한) ‘자전적 사회학 개론서’이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국 사회에서, ‘사회학의 쓸모’를 묻는 바우만의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화’의 진격을 멈추지 않으며 괴물이 되어가는 대학(大學), 사회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의 가치가 총체적으로 의심받는 작금의 현실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학을 열정적으로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책은 ‘학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바우만은 앞으로의 사회학자들이 새로운 성찰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으며, 이 책을 만든 방식 자체가 새로운 사회학적 글쓰기라고 말한다.
“대안은 가능하지만, 대안의 가능성은 전적으로 대안을 만드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바우만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에 대해, 지구 반대편의 동시대 사회학자인 노명우는 이렇게 화답한다. “세상에 여전히 ‘비참함’이 존재하는 한, ‘좋은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한 희망은 ‘원칙’일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들어 심지어 망원경까지 동원해 은하계의 체계를 연구하려던 사회학자는 이제 하늘을 향하던 시선을 두리번거리는 시선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두리번거리던 사회학자는 ‘지금’ ‘여기’에서 ‘좋은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세상에 여전히 ‘비참함’이 존재하는 한, ‘좋은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한 희망은 ‘원칙’일 수밖에 없다.
사회학의 쓸모를 묻는 일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기억작업이다. 그렇기에 사회학의 쓸모를 묻기 위해 잠시 사회학의 초창기를 기억해내지만, 그것은 결코 사회학의 화려했던 과거를 아쉬워하는 노스탤지어적 태도로 수렴되지 않는다. 사회학의 쓸모를 묻는 일은, 과거의 잃어버린 꿈을 기억해내되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학을 기대하는가, 어떤 사회학이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관한, 미래를 묻는 질문이다. 바우만을 통해, 그리고 바우만과 함께, 우리는 사회학의 쓸모 있는 미래를 함께 탐색한다. 바우만은 ‘지금’ ‘여기’에서 사회학의 쓸모를 되찾기 위한 공공사회학의 기나긴 여정에 대한 한 가지 ‘경우’이다.”
- 노명우(사회학자), ‘역자 후기’에서

사회학을 왜 하는가?
사회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바우만 사상의 정수와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을 66개의 대담 속에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사회학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오늘날 사회학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 유동적인(liquid) 현대 세계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사회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학을 읽어야 하는지, 나아가 사회학의 정치성과 윤리성,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학의 임무와 지식인의 역할, 사회학적 대화의 기술, 문학과 예술과 은유의 힘, 비판사회이론과 공공사회학의 길, 인간의 자유와 해방 등에 대한 바우만의 성찰을 섬세하고도 힘 있는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바우만 자신의 저작에 담긴 원칙,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삶과 생애 이력에 대한 성찰, 유동적 현대 세계에서 사회학자의 소명 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 왜 위기인가?
오늘날 사회학은 아카데미 내부에 안전하게 뿌리내린 듯 보이는 하나의 제도적 분과학문이다. 하지만 바우만은,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표류하며 거의 쓸모를 잃어가는 위기의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사회학은 일종의 과학의 모습을 취한 ‘마법’이 되어, 사회학이 분석하고 탐구하고 서술하는 인간 존재의 삶으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물신화, ‘가치중립성’에 대한 집착, 난해한 전문용어의 발전, 전문가주의를 이용한 각종 도구의 차용 등 이 모든 것이 사회학과 사회학이 탐구하는 세계 사이에서 장벽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장벽을 넘지 않는 사회학만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렇듯 ‘과학적’.‘객관적’이라는 바리케이드 뒤에 숨은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통찰을 정책 입안자에게 판매하거나, 권력자가 연구기금 제공 등으로 자신을 구매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결과 사회학은 자성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계도 지속되고 사회학도 지속되지만) 사회학과 세계는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직 ‘사회학만이 사회학을 구원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사회학자는 자신을 과학이라는 세계의 가치중립적인 기술자가 아니라, 자신 또한 세계에 관여하는 행위의 주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다음과 같은 경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대에 만연해 있는 우상의 면전에서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지배적인 흐름을 거슬러야 한다.”

- 사회학은 과연 쓸모가 있는가?
바우만은 무엇보다 우리가 ‘온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사회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신은 왜 사회학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치고 황폐한 조국(폴란드)으로 돌아왔을 때, 우주의 신비를 향하던 젊은 시절의 열정을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리얼리티로 이동시키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70여 년이 지났지만, 사회학을 처음 시작하도록 만들었던 동기는 여전히 시사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본문 71쪽)

각자의 걱정거리와 고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사회학은 쓸모가 있다. 사회학은 그러한 걱정거리와 고민이 사실은 역사의 특정 순간의 공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학은 당대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내러티브)를 결합할 수 있다면 쓸모 있다. 반면 정보만을 제공하는 사회학은 쓸모없으며, 사회학이 권력에 팔려간다면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이 펼쳐지는 동시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학의 책무이며, 나아가 사회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포부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바우만은 인간 경험(체험)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깨어있음’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 상식을 의문시하라고 호소한다. 이는 우리가 단지 이 시대의 피해자로 머무르지 않고 고유의 역사를 창출해내는 능동적인 인간으로 변신하기 위해, 현재의 세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해달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바우만은 사회학자의 헌신적 소명을 강조한다.

“사실 사회학자라는 우리의 소명은,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는 이 시대에 인간적 가치를 옹호하는 용기와 그에 대한 일관성 있는 태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충성심이 심사되는 영역이 될 것입니다.” (본문 75쪽)

“우리 시대의 아고라는 시장 가판대로만 가득 차 있고, 상품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만 허용할 뿐입니다. 정보 역시 사고파는 경우에만 유통되지요. 하지만 이제 그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바꾸기를 원한다면 첫 번째로 할 일은, 바로 아고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114쪽)

“가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회학의 임무도 사명도 아닙니다. (…) 다만 사회학의 소명은, 가치의 선택이 실현 가능하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발생한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혼자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지친 개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 사회학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어떤 특정한 가치 체계가 아니라, 마거릿 대처에 의해 널리 퍼진 ‘대안 따위는 없다’와 같은 태도입니다.” (본문 135~136쪽)

이 책은 사회학의 쓸모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우만의 증언과도 같다. 바우만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힘이 있다. 구체적인 사람들의 경험으로 이뤄진 ‘당대’에 천착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을 때, 사회학은 쓸모 있다(useful). 반면 그저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에 기꺼이 팔려갈 때, 사회학은 쓸모없는(useless) 것이 된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그들 자신의 삶을 바꿔내는 데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사회학은 뭔가 해낸(successful)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회학의 궁극적 목표이며, 사회학의 쓸모란 결국 이런 것이다.
이 책에서 ‘사회학’이라는 하나의 분과학문을 ‘학문’ 일반으로 치환하고 ‘사회학자’라는 특정 주체를 ‘지식인’ 전체로 호명해도, 바우만의 충고와 비판은 오늘날 한국과 세계에서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