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왜 문제인가 - 교과서 국정화의 역사와 현 단계 쟁점 읽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왜 문제인가 - 10점
김한종 지음/책과함께
교육부는 2015년 9월 23일에 고시한 교육과정에서 “학습자 스스로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며 비교, 분석, 종합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과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라고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교과서를 국정화해서 역사 해석을 하나로 통일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모순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그런데도 왜 대통령과 정부, 집권 여당은 이토록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진력하는 것일까? 일부 사람들은 왜 이를 지지하는 것일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을 지켜보면서 역사교육 연구자로서 나의 생각을 이 책에 담았다. 그동안 진행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과 그것이 의도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고, 국정제 논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적해보았다. 이러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역사 교과서 발행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로 이어진다. - [들어가는 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근본적으로 나쁘다
국정제는 역사 교과서 발행제도로 적합하지 않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역사 해석을 하나로 획일화하기 때문이다

책과 역사

1933년 나치가 유대인 지성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자행한 화형식으로 유럽에서 1억 권의 책들이 사라졌고, 이로써 칼 마르크스, 잭 런던, 헬렌 켈러,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의 책은 금서가 되었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는 법가 사상 아래 전제주의적 통일 국가를 만들고자 자국의 사서를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태우는 분서 사건을 일으켰다. 동서와 고금을 달리하여 반복되어온 사상 통제의 역사에 2015년 대한민국이 한 줄을 보태게 되었다.
보수 인사들과 언론이 앞장서고 정부가 뒷받침하면서 검정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여론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에서 추진했고, 북한이 채택하고 있으며,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시행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부활된 것이다.
이 책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역사적 배경과 쟁점들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저자인 한국교원대학교 김한종 교수는 이 책에서 2015년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르기까지 역사 교과서를 두고 펼쳐진 역사인식 통제의 역사를 분석하였다. 근대 교육이 성립된 이후로 교과서 발행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다른 나라의 역사 교과서 발행제도가 어떠한지, 유엔의 역사 교과서 권고안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21세기 대한민국에 걸맞은 역사 교과서의 모습을 제시한다.

역사 교과서를 흔들어온 한국 현대사

수많은 역사 이론서들이나 글들이 강조하듯이 역사적 사실은 곧 해석이며, 학교 역사교육은 학생들에게 정해진 하나의 해석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그럼에도 1973년에 국사교육 강화를 명분으로 진행한 국정 국사 교과서 발행이나 2015년의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내건 국정화 시도가 의도한 것은, 결국 학생들에게 정해진 하나의 해석을 주입시키는 역사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1973년의 국정화가 더 노골적이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식에 있어서도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 똑같다. 박정희 정권 당시 1973년 6월 23일에 국정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국정교과서 편찬 작업에 들어가 1974년 1학기부터 중?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했다. 현 정권 역시 2015년 10월 12일에 새 국정 교과서를 2017년 3월 새 학기부터 배포하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7월 30일에 교육부에서 최초 사용 학년도가 시작되기 2년 전에 교과서 검정 공고를 내어 검정 교과서 집필 기간이 최소 1년 이상이 되도록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던 것에 비추어 매우 짧은 일정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처럼 여론을 외면하며 국정화를 무리한 일정으로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그토록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과 그 해석은 무엇일까? 이처럼 역사 교과서를 통제함으로써 획일화하고자 하는 역사 해석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 책은 이에 대해 하나하나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 ‘자랑스러운’ 역사는 어떤 역사인가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을 자세히 서술하는 역사 교과서는 ‘자학사관’이며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다.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서술이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는 이런 관점의 차이에서 생긴다. 그런데도 국정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런 관점과 해석의 차이를 마치 역사적 사실의 오류인 것처럼 가장한다.

● 역사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비판 없이 서술하고 있는가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않은 교과서는 없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교과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와 우상화에 이용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김정일 세습과 반대파 숙청, 주민 통제에 이용되었다고 지적한 교과서도 있다. 황교안 총리가 99.9퍼센트 대 0.1퍼센트라고 대비시킨 그 0.1퍼센트의 교학사 교과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주체사상 자체에 대한 직접적 설명은 교학사 교과서가 가장 자세하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별도로 인용하지 않겠지만, 검정 ≪한국사≫ 교과서 8종은 모두 북한에 관한 서술 마지막 부분에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즉 만성적인 식량 및 에너지 부족을 비롯한 경제난, 주민 감시와 통제, 정치범 수용소 설치 등의 인권 문제, 탈북자의 증가,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을 지적하고 있다.

● 역사 교과서는 6·25전쟁을 남북한 공동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가
8종 검정 ≪한국사≫ 교과서들은 모두 전쟁이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되었음을 명시하고, 유엔이 이를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유엔군 파견을 결정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6·25전쟁이 어느 편의 침공으로 시작되었는지 혼동을 줄 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 정상적으로 한글을 해독하고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혼동하지 않는다면, 어느 교과서를 읽더라도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수립을 ‘정부 수립’으로 폄하하고 있는가
사실 이 문제는 이른바 ‘건국절’ 논란이 있기 전에는 크게 관심을 끌지 않았다. 어느 용어가 타당한지 논의는 제쳐 놓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이전부터 널리 사용되던 표현으로 검정 ≪한국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폄하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결국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검정 ≪한국사≫ 교과서가 북한에 호의적이고 대한민국에 비판적이라는 식으로 몰아가기 위한 ‘트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한 교과서 발행제도는 무엇인가
첫째, 교과서 발행제도를 지금보다 더 자율화해야 한다. 현재의 검정제보다는 인정제, 인정제보다는 자유발행제가 질 좋은 교과서를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장 인정제나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기 어렵다면 검정제의 통제 장치를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교과서의 획일화를 막고 다 양한 교과서의 제작을 유도할 수 있다.
둘째, 검정 업무를 교육부나 행정부서가 아닌 전문성을 가진 독립 기구에 맡겨야 한다. 특히 역사와 같이 정치권력을 비롯한 외부의 압력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의 교과서 검정 업무일수록 전문성을 가진 독립적인 검정 기구가 필요하다.
셋째, 교과서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심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편수 기능은 약하다. 그 이유는 편수 업무가 검정 심사를 하거나 교과서 개발과 발행, 보급의 관리·감독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 교과서의 성격을 다양화해야 한다. ‘교과서’의 범위를 ‘교과용 도서’로 넓혀,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교과서를 펴낼 수 있는 제도와 행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교과서는 학자와 교사에게 맡겨라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 발행 반대”에 그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검정으로 바꾸면서 교육부는 초등학교 일부 교과서를 검정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그중에는 ≪사회≫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초등 교과서의 검정제 전환은 슬그머니 중단되었다. 중등 교과서뿐 아니라 초등 교과서도 국정으로 발행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다수 있지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치켜세우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식민지 근대화론, 친일, 이승만 미화, 숱한 오류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쏟아진 비판에 대해서도 저자는 그 논리가 반드시 적절한 것만은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검정 심사는 어떤 책을 탈락시키거나 특정 책만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어차피 학교에서 채택하여 사용해야 교과서로서 효력을 발휘하므로, 교과서로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교사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판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한 가지이다. 그 바탕에는 역사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사고는 비판적 사고다. 비판적 사고는 주어진 규범이나 행동 양식, 진술 등에 의문을 가지거나 회의적으로 보는 생각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는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권위 기관이 펴내는 단일 국정 교과서는 민간에서 여러 종을 펴내는 검정 교과서보다 훨씬 강력한 권위를 가진다. 교과서 내용의 정당성이나 신뢰성을 떠나서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하나의 역사를 배우기 때문이다. 설사 국정 교과서 내용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텍스트 내용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교과서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국정제가, 역사 교과서 발행제도로 적절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다.
저자는 역사, 역사교육,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꿰뚫는 이론서들을 집필하고 각종 매체를 통해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에 참여해왔다. 저자의 다른 저서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의 마지막 장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 내용도 달라져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2008년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비판 파동’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덕에 지난 10여 년간 역사전쟁의 한복판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다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왜 문제인가≫를 통해 저자는 지금이라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취소하고 교과서 집필과 보급을 자율화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발행체제의 역사
1908년 8월 28일 학부,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 발행 규정인 ‘교과용 도서 검정 규정’ 공포
1920년 조선총독부, 초등 역사 교과서 처음 발행
1942년 3월 조선총독부, 국정 ≪중등국사≫(저학년용) 발행
1945, 1946년 미군정 초?중등 역사 임시교재 발행
1948~1973년 교수요목~제1차, 제2차 교육과정, 검정 교과서 발행
1968년 실업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국정 발행(1971년 개정)
1974~2006년 제3차~제7차 교육과정, 국정 ≪국사≫ 교과서 발행
1979년 중학교 ≪사회 2≫(세계사), 고등학교 ≪세계사≫ 국정 발행
1982년 교과서 개정으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만 검정으로 환원
1994년 ≪국사≫ 교과서 준거안 파동
2003~2010년 제7차 교육과정, 선택과목인 고교 ≪한국근?현대사≫ 검정화
2011~2014년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모두 검정으로 발행
2013년 8월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교육부 검정 통과
2017년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 발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