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했던 날들을 떠올리면
늘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공기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어쩐지 마음 한쪽이 허전하면서도
이상하게 숨 쉬기 편했던 공기.
그때의 나는 가진 것이 적었다.
통장 잔고는 늘 숫자가 아니라
기분에 가까운 무언가였고,
무언가를 사기 전에는
‘정말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 사람이었다.
그 질문은 때로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선택은 조심스러웠고,
선택 뒤에 오는 기쁨은 유난히 또렷했다.
가난한 날의 행복은
대체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작아서 더 분명했다.
편의점에서 고른 하나의 빵,
세일 스티커가 붙은 우유,
낡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오후의 햇살.
그 모든 것들이
“이 정도면 오늘은 괜찮다”고
나를 설득해주었다.
행복이란 단어를 쓰기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날의 마음은 분명 무너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에는 나 자신과 가장 많이 대화했다.
지금 꼭 필요한 것과
조금 더 버텨도 되는 것을 구분했고,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기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조금씩 드러났다.
가난은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나의 기준을 또렷하게 남겨두었다.
물론 그 시절이
마냥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불안은 늘 있었고,
미래는 자주 흐릿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혼자서 건너고 있었고,
하루를 마치며 스스로에게
“오늘도 잘 버텼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
그 말 한마디가
그날의 작은 행복이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만큼 더 많은 걱정을 안고 있다.
그래서 가끔,
가난했던 날의 행복을 떠올린다.
그 시절의 행복은
무언가를 소유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생겨난 감정이었다.
아마도 그게
가난한 날의 행복이 가진
가장 조용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부자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잃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날들은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단단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