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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8일 금요일

자기 앞의 생 - 국내 최초의 원작 계약

자기 앞의 생 - 10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문학동네
국내 최초의 원작 계약

“출판사에서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몰라 광고를 통해 작자를 찾기까지 한 75 공쿠르 상 수상자 에밀 아자르! 그는 누구인가? 정말 그가 썼는가? 왜 상을 거부했나? 전 세계에 파문을 던진 아자르의 충격!”
1976년에 출간된 문학사상사판 『자기 앞의 생』에는 작가 소개 대신 이 문구가 자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 이외에도 수많은 판본의 『자기 앞의 생』이 출간되었지만, 어느 판본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지 않았으며, 소설의 많은 부분이 누락된 채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된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메르퀴르 드 프랑스 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새롭게 번역된, 그야말로 정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로맹 가리 사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로맹 가리의 유서라 할 수 있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모든 좋은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울면서 동시에 웃게 만든다. -- 누벨 옵세바퇴르

『자기 앞의 생』은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범한 일이란,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모모는 내게 말해주었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조경란(소설가)

『자기 앞의 생』은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자기 앞의 생』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아픈 소설이다. 누가 삶을 두고 등허리에 무거운 짐을 얹고 산을 향해 조심조심 오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산을 오르기는커녕 어린 그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아니다. 차라리 힘들다고 주저앉아 운다면, 발버둥치며 제발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그의 삶을 읽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작품을 읽는 내내 우리는 힘이 든다. 힘이 들어 몇 번씩 책장을 덮어야 하고, 같은 이유로 또다시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린 모모는 그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니컬한 냉소로 그 무게를 떨쳐내려 한다. 그의 그런 냉소가 무수한 눈물들이 쌓인 알갱이들이란 사실을 잘 알기에 가슴이 아릴 수밖에……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작가는 자기의 실제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열네 살 모모의 눈을 통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을 바라본다.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꿈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은 더욱 각박하고 모진 곳이다.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버림받은 창녀의 자식들,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는 여자,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 전환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살인자……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소외시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버림받은 사람들, 소진되어가는 삶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가득 차서 살아간다. 그를 맡아 키워주는 창녀 출신의 유태인 로자 아줌마를 비롯해 이 소외된 사람들은 모두 소년을 일깨우는 스승들이다. 소년은 이들을 통해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동시에, 삶을 껴안고 그 안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어디에서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을 사람, 내 편인 사람을 두 사람만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신경숙 소설의 한 구절이다.
죽은 로자 아줌마를 아줌마만의 지하방, 낡은 소파에 고이 앉혀두고 점점 푸르게 굳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을까 몇 번씩 화장을 고쳐주며 그 옆을 지키는 모모에게 아줌마는 바로 이러한 "내 편"인 단 한 사람이었다. 친아버지에게도 아이를 내주지 않은 아줌마에게 역시 모모는 아줌마의 "내 편"인 단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한 관계의 사랑은 서로를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것이었다.

가진 것 없고 무시받는 이들의 남루한 삶을 들추고 소년이 발견하는 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의 비밀’이다. 그것은 어리둥절한 소년의 목소리를 빌려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함축적인 진실이기도 하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는, 그의 복화술사 모모는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

"미토르니히 조르겐.” 유태어를 모를까봐 말해주겠는데, 그건 ‘세상을 원망할 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세상을 원망할 건 없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고, 또 사랑하고 있으니까.

고독한 광대 로맹 가리의 삶과 죽음--『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휴머니즘의 작가’로 알려진 로맹 가리는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유태인이다. 그의 어머니는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조국 러시아를 등지고 아들과 함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로 십여 년에 걸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이민자로 프랑스 땅에 정착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그런 억척스러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로맹 가리는 글쓰기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 2차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 단체‘자유 프랑스’로 활동하며 로렌 비행 중대에서 대위로 활동한 공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한다. 전쟁 후 그는 세계 각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1956년에는 소설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일곱 살 연상의 『보그』지 편집자 레슬리 블랜치, 『네 멋대로 해라』의 히로인 진 세버그 등과의 화려한 결혼생활 외에도 그는 성공한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연예인 같은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늘 새롭고 싶었던 고독한 작가의 모습이 있었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이외에도 포스코 시니발디, 샤탕 보가트라는 가명으로 여러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의 삶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이름을 바꿔서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 그 근원을 두고 있던 것이다.
결국 아자르의 이름으로 발표한 두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한 작가에게 결코 두 번 주어지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고,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가며 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결국 ‘아자르를 표절하려 든다’는 아이러니컬한 모함마저 받게 된다. 전처 진 세버그가 약물 투여로 자살하고 난 일 년 후인 1980년 12월, 로맹 가리 역시 권총자살로 고독했던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그의 자살 후 출간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로맹 가리는 아자르가 자신임을 밝히고 소위 ‘파리풍’이라는 문단권력과 작품조차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 비평을 쓰는 평론가들을 조소하며 자신이 왜 가명을 쓰면서까지 끊임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하여 고백한다.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 로맹 가리

1975년 공쿠르 상 수상자가 『자기 앞의 생』을 쓴 에밀 아자르라고 발표되자 수상작가는 공쿠르 상 아카데미에 수상 거절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아카데미 의장인 에르베 바쟁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아카데미는 한 후보가 아닌 한 권의 책에 투표한 것이다. 탄생과 죽음처럼 공쿠르 상은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수상자는 여전히 아자르이다.” 그렇게 해서 베일에 싸인 작가 에밀 아자르는 수상자로 남게 되고, 후에 아자르가 실은 로맹 가리임이 밝혀지게 되면서 로맹 가리는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로 남게 된다.

슬픈 결말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은’어린 날들은 곧 지나가버린다. 『자기 앞의 생』을 읽고 난 얼마 후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고 모모처럼 커다란 상처와 그것을 숨길 수 있는 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은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범한 일이란,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모모는 내게 말해주었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앞의 생』을 덮고 나자 문득 진심을 다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게 그를 부르고 싶은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과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또 문득 누군가 아주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는 이 생을 산다는 건 땅에 소금을 뿌리거나 얼음 조각을 옮기는 일처럼 그렇게 무용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들을 뜨겁게 나눌 수 있게 될지도 모를텐데. 그리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에 관해서.--조경란(소설가)

2015년 12월 3일 목요일

고슴도치의 우아함

고슴도치의 우아함 - 10점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문학동네
“미셸 부인에겐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있다.
몹시도 고독하고 더없이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처럼.”

지적인 유머, 철학적 사색, 허세를 향한 일침
전 세계 32개국 600만 ‘우아한 고슴도치’들을 위한 처방전!

“내게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준 책.”
_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만병통치약이다. 렉스프레스
페낙의 ‘말로센 시리즈’처럼 혹은 영화 <아멜리에>처럼! 르몽드


남다른 지성과 교양을 감추고 살아가는 오십대 수위 아줌마 르네 미셸, 세상의 부조리와 삶의 허무를 너무 일찍 깨닫고 죽기로 결심해버린 맹랑한 천재 소녀 팔로마 조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단단한 가시를 세우고 그 안에 웅크린 채 살아가던 고독한 인물들이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힐링 메시지’다. 감동적인 줄거리에 예술의 본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담론, 그리고 문학, 철학,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사색, 속물적인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풍자,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등이 풍성한 곁가지를 더한다.
2006년 프랑스 출간 당시 113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 세계 32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600만 이상의 독자로부터 사랑받아온 이 작품을 문학동네에서 참신한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이번 복간을 통해 기존의 번역(2006, 아르테 출판사 출간)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독자들에게 보다 매끄러운 독서 기회와 더 진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힘들고 지친 삶을 치유하기 위한 독서 경험을 담은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 니나 상코비치는 이 소설이 자신의 저작의 모티브였으며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준 책”이라 말했다. 또한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소개되는 등 국내외 수많은 명사들의 추천 도서로 손꼽혀왔다. 철학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처럼, 유쾌하면서도 날 선 풍자가 가득하고 삶 속으로 한 발 내딛으며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프랑스 국민 작가 다니엘 페낙의 ‘말로센 시리즈’ 혹은 영화 <아멜리에>처럼 다가올 것이라 르몽드 지는 평했다. 2009년 모나 아샤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 “미셸 부인에겐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있다.
몹시도 고독하고 더없이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처럼.”


톨스토이와 스탕달, 말러의 교향곡, 빔 벤더스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칸트와 마르크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평범한 수위 아줌마라기엔 조금 ‘특별한’ 심미안! 하지만 건물 수위라는 “사회의 보편적 환상”에 부합하기 위해 파리 부촌 그르넬 가 7번지의 르네 미셸은 자신의 지성과 교양을, 자기 자신을 감추고 살아간다. 문학과 음악, 영화, 미술 등으로 내면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진정한 아름다움과 예술의 추구, 지식 등은 수익이나 지위를 올리기 위한 피상적인 지적 허영이나 우월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세대주 한 번 바뀐 적 없는 이 아파트 1층 수위실, 자신의 은신처에서 이십칠 년을 근무하는 동안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치밀한 노력과 설정 덕분이다. 교양서적을 읽을 땐 늘 텔레비전을 크게 켜두고, 사람들 앞에선 일부러 저속한 표현이나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골라 하고, 식생활마저 ‘수위답게’ 가장한다.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수위 아줌마로 보이기 위한 눈물겨운 고군분투, 꼭 필요한 만큼의 예의와 퉁명스러움으로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르네의 고독한 삶. 그녀의 바람처럼, 이 건물 주민들의 눈에 그저 무식하고 괴팍한 수위, 오히려 유령 같은 존재일 뿐이다.
넘치는 지성과 교양 때문에 때때로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르네의 비밀스러운 일상은 대체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과 ‘계층’이 다른 노동자의 삶이나 취향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부르주아들을 상대로 르네가 집착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 살가운 척하지만 모두 “‘편견 없는 좌파로 잘 자랐기 때문에 수위하고도 스스럼없이 지낸다’는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 주민들의 가식과 위선. 그런 모순 앞에 르네는 철옹성처럼 더욱 견고하게 가시를 세운다.
거짓과 허세로 가득한 이 호화 아파트에 조만간 위기가 닥칠 듯하다. 6층 장관집 막내딸, 맹랑한 천재 소녀 팔로마 조스 때문. 국회의원 아빠에, 문학박사 학위를 가진 엄마,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언니. 엄마도 부자, 아빠도 부자, 아직 열두 살의 팔로마는 자신도 잠재적으로 부자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도 다른 어른들처럼 언젠가 어항 속 금붕어처럼 끝나버리리란 것도.
세상의 부조리와 삶의 허무를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팔로마는 그래서 죽기로 결심한다. 학기가 끝나고 열세 살이 되는 날, 엄마의 서랍에서 훔친 수면제를 먹고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불을 질러 자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아파트도 잃고 딸도 잃은, 세상과 타인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이제는 불쌍하게 죽어간 아프리카 사람들을 한 번쯤 떠올려주길 기대하며.
얼마 후, 5층에 사는 요리 비평가 아르탕스 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이십칠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온다. 프랑스 정치, 경제, 문화계의 인물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의 새 입주민답게 부유하고 세련된 일본인 신사, 하지만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보는” 능력이 있는 가쿠로 오즈. 그가 아파트의 새 입주민이 되면서 르네와 팔로마 두 사람의 삶에도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는 르네의 삶에 찾아온 잔잔한 파동, 아무에게도 고백할 수 없었던,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게 된 르네의 ‘진짜 비밀’과 가슴을 저미는 반전, 팔로마의 새로운 계획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우리는 모두 고슴도치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는


캐비어 좌파(프랑스), 샴페인 사회주의자(영국), 부르주아 보헤미안(미국)…… 진보적 이념을 내세우면서 의식과 물질이 따로 노는, 가진 자의 위선이나 허위의식을 꼬집는 말들. 이 소설은 이른바 ‘캐비어 좌파’들을, 허울 좋게 겉으로 내세우는 이념과 실제 행동 방식이 다른 부르주아들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마르크스에 의해 세계관이 달라졌다는, 400제곱미터나 되는 아파트에 사는 부르주아 청년에게 르네는 참다못해 『독일 이데올로기』나 읽어보라고 응수한다. 팔로마 역시 모순 덩어리인 가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또다른 인물들을 향해 열두 살짜리 어린아이답지 않은 매섭고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평범한 일상을 관조하는 그들의 진지하면서도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엔 분명 사회적이고 풍자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부차적 요소일 뿐 작품의 핵심은 아니다. 고독한 두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집착에서 벗어나 조화를 꾀하고, 혼돈 속에서 아름다움을 구하려는 그들의 모습 말이다.” 뮈리엘 바르베리

소설 중반 새 입주자 가쿠로 오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르네와 팔로마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않는 듯, 각자의 일상과 그 속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각자의 관점으로 외따로 기록해나갈 뿐이다. 그러나,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마주하는 두 사람은 하나의 뿌리, 같은 심연을 가진 영혼의 자매처럼 서로 닮아 있다. 나이도 사회적 격차도 다른,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두 인물은 서로를 향해, 세상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서로의 고독에 공감한다. 그리고 여전히 부조리하며 무심한 세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의미와 생의 아름다움을 찾아나간다. 저마다의 상처와 한계를 떠안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웅크린 채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두 인물들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될 때, 특별한 사연을 가진 듯 보이지만 결코 우리 모두의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더욱 진한 여운과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된다.

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스무 살 - 김연수(문학동네)

스무 살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김연수 문학의 시작, 15년 만에 다시 펴내는 그의 첫 소설집!

1994년 등단한 이후 21년 동안 8권의 장편소설과 5권의 소설집을 펴낸 이가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1년 반에 한 권꼴로 작품을 발표해온 셈이다. 이를 더 잘게 쪼갠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일 테다. 오직 ‘쓴다’라는 동사로만 자신을 증명해온 작가, 바로 김연수다. 그러니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국소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지적 소설의 한 장(場)을 열어젖혔다는 평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라는 평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그의 성실한 소설쓰기가 어떠한 지반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소설세계를 갱신해온 작가 김연수, 지금의 그를 예감케 하는 그의 첫 소설집 『스무 살』을 마침내 15년 만에 다시 펴낸다.
이번 개정판은 단순히 초판의 몇몇 오류를 바로잡고 차례를 새로이 정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문예지를 통해 발표했으나 단행본에는 묶이지 않았던 「사랑이여, 영원하라!」와 세상에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미발표작 「두려움의 기원」을 수록해, 김연수의 첫 소설집이 재발간되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 안에서 어떤 작품보다 작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표제작 「스무 살」은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라는 뼈아픈 비유로 시작된다. 그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지 모른 채, 운동권에서는 약간 비껴선 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나온 스무 살 무렵의 시간들을 서정적인 필치로 감싸고 있다. 하지만 이 애틋한 온기에 몸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전혀 다른 질감과 톤으로 무장한 소설이 곧바로 이어진다. 「마지막 롤러코스터」는 ‘플라잉코스터’라는 상상의 롤러코스터를 만들어내어 극도의 스피드와 텐션을 추구하다 끝내 롤러코스터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안전바 하나에 의지한 채 예측 불가능한 속력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마지막 롤러코스터」는 시종 거친 속도감과 박력으로 독자를 끝까지 몰아붙인다. 자신이 만들었던 선풍기를 모조리 수집하고 다니는 이상한 선풍기 수집가의 이야기인 「공야장 도서관 음모사건」 역시 이 풍부하고 이채로운 소설세계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 선풍기를 만들면 만들수록 선풍기가 지닌 가능성을 고갈시켜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회의감에 빠진 선풍기 수집가를 통해, 소설쓰기를 추동하는 힘에 대해 역설적으로 묻는다.
이처럼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를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놓는가 하면 이를 뒤엎듯 리얼리티가 배제된 환상적인 소설을 펼쳐놓으며 다양한 소설적 기법을 자유롭게 실험하는 이십대의 김연수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지금의 김연수를 예감케 하는 빛나는 대목들이 『스무 살』 안에는 스며 있다. 그 반짝반짝한 것들이 잘 여물기까지 작가가 통과해야 했을 “축축하고 어둡고 싸늘한 터널”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을 함께 읽어온 독자들은 어느새 벅찬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스무 살』은 그 제목처럼 김연수의 소설세계에서도 ‘청춘’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첫’소설집만이 지닐 수 있는 어떤 확신과 불안, 에너지와 주저함 모두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는 지나왔고 누군가는 지나가는 중이며 누군가는 지나칠 예정인, 저마다의 스무 살의 모습과 꼭 닮은 모습으로 말이다.

2015년 10월 8일 목요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편집자의 책 소개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불편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어떤 윤리와 애도의 방식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2008년 ‘젊은 시의 언어적 감수성과 현실적 확산 능력을 함께 갖췄다’는 평을 받으며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박준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엄숙주의에서 해방된 세대의 가능성은 시에서도 무한하다고 봐요”라 말한 바 있다. 그렇게 ‘작고 소외된’ 것들에 끝없이 관심을 두고 탐구해온 지난 4년, 이제 막 삼십대에 접어든 이 젊은 시인의 성장이 궁금하다. 모름지기 성장이란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깨닫는 것일 터, 이번 시집에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순간들에 대한 사유가 짙은 것은, 박준 시인의 깊어져가는 세계를 증거할 것이다.

1. 
박준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서사성’을 들 수 있다. 일련의 서사 위에 최근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전위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대신 낯설지 않은 서정으로 무장해 오히려 참신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특정한 사건사고의 묘사로 읽히는 시가 빈번하다는 점인데, 그것이 시적 화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건을 기록해두는 데 의의를 두는 듯해 더욱 눈에 띈다.

반디미용실에서 처음 낙타를 보았습니다 미용실 누나는 쌍봉낙타 봉 같은 가슴 사이에 제 머리를 묻고 비뚤어짐을 가늠했고 저는 실눈만 떴다 감았다 했습니다 (……) 누나는 동네 아저씨들 술자리의 기본 안주가 되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의 커피 잔에서 설탕과 함께 휘저어졌습니다 (……) 낙타가 떠난 날은 감나무집 형이 소주를 댓병으로 마신 날이었습니다 형 가슴보다 까맣게 그을린 반디미용실 건물, 석유 말 통과 담뱃불이 반딧불이처럼 날아들어왔다는 미용실 주인은 양귀비 염색약처럼 까맣게 울었습니다 (……) 낙타가 사하라로 갔는지 고비로 혹은 시리아 사막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마음을 걷던 발자국은 아직도 남아 저는 요즘도 간혹 그 발자국에 새로 만나는 미인들의 흰 발을 대어보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인의 발」 부분

총무는 채점을 하다 말고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매년 이차에서 떨어졌던 그도, 탈출해 나왔다면 내년쯤에는 아마 이등병이 되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왜 결핍의 누대(累代)에는 늘 붉은 줄이 그어졌는지 알고 계실까요?

3층에 사는 여자들이 이차를 마치고 돌아온 듯했습니다 공동 주방에서 부치는 달걀 냄새가 온 방실을 점유하고 있었죠 스탠드가 꺼지고 소방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습니다
―「유성고시원 화재기」 부분

‘반디미용실 화재, 여직원 1명 사망’으로 일간지 사건사고란에 간략히 보도되고 끝났을 일을 시인은 시로 남겼다. 덕분에 우리는 그녀를,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애도할 수 있다. 구청에서 직원이 나올 때마다 정신이 돌아와 바른말을 하는 치매 노인이 실은 사복을 입고 온 군인에게 속아 남편의 은신처를 알려주고 말았던, 그리하여 혼자가 되었던 사연을 기록으로 밝혀줌(「기억하는 일」)으로써 우리는 노인을, 노인의 바른말을 이해할 수 있다. 「유성고시원 화재기」를 읽으면 우리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떠올려볼 수 있다. 화재가 누전인지 방화인지 끝내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 울먹울먹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각”된다는 진술자의 모호한 말이 어쩐지 명백한 진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역시 ‘유성고시원에서 화재가 일어나 얼마의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가 있었다’로 요약될 일이었다. 이렇듯 박준 시인은 ‘사건’을 ‘삶’으로 바꾼다. 대개 결핍된 사람들의 삶이다. “결핍의 누대(累代)”를 사는 사람들. 시인은 들리지 않고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리고 보이게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복원한다. 기억되도록 하는 일, 그저 그런 삶이라 치부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일, 그것은 박준 시인이 불편한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자 그 안에서 쉬이 잊힌 숱한 삶들을 애도하는 형식일 것이다. 

2.
불편한 세계를 사는 시적 화자는 자주 아프다. “나는 매일 병(病)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용산 가는 길」),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아프고 팔 일은 앓았다”(「2:8」),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눈을 감고」),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꾀병」) 등과 같이 시집에는 병의 기록이 무수하다. 어째서인가.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마음 한철」)는 지나간 사실, “가족이 앉은 돗자리 위로 청룡열차 선로가 만든 그늘이 옥(獄)의 창살처럼 내”렸던 유년의 기억, 수학여행에 가지 못하고 “흙에 종이를 묻는 놀이”를 하며 “결국 무엇을 묻어둔다는 것은 시차(時差)를 만드는 일이었고 시차는 그곳에 먼저 가 있는 혼자가 스스로의 눈빛을 아프게 기다리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온몸에 새겨왔기 때문이다. 요컨대 범박한 일상 속에서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눈썹」)니다가 문득 고독한 자아를 마주하고 세계에 눈을 뜨며 얻은 일종의 성장통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자신의 병을 ‘꾀병’이라 말하는 것은 자신보다 이 세계가 더 아프리라는 인식에서 시작될 터이다. 

3. 
아픈 ‘나’의 이마를 짚어주는 손이 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하는 ‘미인’이다. ‘유서도 못 쓰고 아픈’ 내 곁에 누워 잠든 미인(「꾀병」),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하는 미인(「호우주의보」). 시집 곳곳 출몰하는 미인은 ‘나’와 세계를 연결하고, 죽음과 삶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활약한다. 때로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연정의 대상이기도 한데, 그것이 이성(異性)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의, 그리고 시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인의 열망, 이상향으로서의 ‘미인’으로도 충분히 읽히며, 이는 끊임없이 앓고 있는 시적 화자를 지탱해주는 지향점으로 기능한다. 

그는 이 세계가 자신의 위장 속에서 결국 소화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에 시달린다. 위장 안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세계도 언젠가는 불쑥 바깥으로 나온다. 아마도 더이상 이 세계를 위장 안에 담고 있지 못할 거라는 시달림. 그 시달림은 소화되지 못한 세계를 바깥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동력이다. 시달림은 “애인의 손바닥,/ 애정선 어딘가 걸쳐 있는/ 희끄무레한 잔금처럼 누워”(「미신」) 있는 상태의 떨림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 떨림의 간곡함이 언어로 환원되었다. 우리는 그 결과를 ‘박준의 첫 시집’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허수경 발문,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며 시인은 시를 쓰네」 부분

세계는 내내 불편한 것일 터이고, 개인의 고통 역시 사라질 수 없는 것, 그러나 그것들 모두 쉽게 잊진 않으리라는 박준 시인의 윤리의식은, 그 ‘떨림의 간곡함’은 진정성 있는 언어로 남아 독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남길 것이라 기대한다.

2015년 10월 2일 금요일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 10점
문유석 지음/문학동네
“나는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의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는 데에 경이로움까지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다.”_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

현직 부장판사, 한국사회를 말하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바람은 그리 커다란 욕망이 아닐 것이나, 이만큼을 바라기에도 한국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문화 풍토는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도록 하면서도 눈치껏 튀지 않고 적당히 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사회생활’이라 여긴다. 조직 또는 관계로 얽히고설킨 것이기에 그런 풍토로부터 웬만해서는 쉽사리 벗어나기조차 어렵다. 그러하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현직 부장판사인 저자가 문제적이라 진단한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때론 신랄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 이를 극복할 방법에 대해 탐색해본다.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 애들 성적…… 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그 모든 경쟁에서 모두 전국 일등을 하기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말처럼 늘 ‘아직 배가 고플’ 테니 말이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 사는 사회다. _29쪽

대한민국에서 개인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

조직과 서열이 중요한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는 자칫 이기주의로 오해받기 일쑤다. 튀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에서 지위재는 무척이나 중요해서 과시하는 문화가 팽배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전전긍긍한다. 그러하기에 남들이 뭐라 해도 상관없이 개성대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삶은 이해받기 어렵다. 행복의 기준도 획일화되어 있어, ‘남들 다 하는 대로’ 갖추고 살아야 행복한 것이라 여긴다. 아등바등 경쟁해야 ‘정상’이고 승진하고 출세해야 인정받는다. 그런데 과연 한국인은 정말로 행복한가? 

한국사회는 이런 사회다. 실제 하는 일, 봉급도 중요하지만 ‘남들 보기에 번듯한지’ ‘어떤 급인지’가 실체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회다. 나이 오십대 중년들의 사회에서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모임에 나타나는 것은 메시지가 다른 것이다. 고위직 판사들이 기사 딸린 차로 나타나다가 어느 날부터 낡은 자가용을 자가운전하여 나타나기 시작하면 청렴한 집단이라고 좋은 평가를 받는 플러스 요인보다 사회적 위상이 예전보다 못한 집단으로 평가받는 마이너스 요인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외관이 실질을 좌우하는 사회다. _30~31쪽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갑을관계, 경쟁관계, 상명하복관계, 나를 평가하고 지배하는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모셔야 하는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과연 나에게 유용한 생존의 도구이기는 할까? 생존의 위협에 가깝지 않을까? _56~5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타인과 타협하고 연대해야 하는가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제도로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반에는 근대적인 의미의 ‘개인’이 있다. 이때의 개인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도 역시 나와 똑같이 그러함을 인정한다. 다만 개인주의자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기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음을 알 뿐이며, 서로의 입장과 영역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러나 군대 문화, 가족주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개인주의자는 별종 취급을 받거나, 때로는 사회적 질타를 받기도 한다. 집단에서 요구하는 것과 개인의 욕망이 일치하지 못할 경우, 혹은 집단의 불합리성을 고발하고자 할 경우 개인주의자는 집단과 ‘불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개인’은 억압당하고 그래서 불행하다. 특히 한국인은, 내가 너무 별난 걸까 하는 생각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거나 자신의 욕망을 제풀에 꺾어버리는 경험을 살면서 수없이 겪는다. 그리고 이는 거꾸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인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나는 우리 사회 내에서가 아니라 법학 서적 속에서 비로소 그 말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_24~25쪽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다

진영논리만이 확연한 정치, 과잉된 교육열과 경쟁 그리고 공고한 학벌사회, 서열화된 행복의 기준 같은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구조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해서도, 우선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각자도생의 저성장시대를 견뎌내기 위해서, 개별적이고 소소하고 다양한 즐거움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부장판사가 ‘글쓰기’를 단지 그냥 즐거워서 한다는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런 분들은 목소리를 낮추며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 “그런데, 이름 알려서 나중에 정치를 하려는 생각인 거지?” 그럴 때면 참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직업이나 성취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그 이름도 위대하신 ‘정치인’이라는 최종 포식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점이다. (...) 이때의 정치란 시민적 의무가 아니라 개인적 출세의 다른 말일 뿐이다. 권력에 부와 명예, 쾌락이 당연히 따르는 걸 지켜봐온 현대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_60~61쪽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_279쪽

2015년 9월 23일 수요일

꿈꾸는 책들의 미로

꿈꾸는 책들의 미로 - 10점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문학동네
출간 즉시 슈피겔 베스트셀러 1위!

“훌륭한 관객은 도전을 원한다.” 최고의 인기 듀오 미텐메츠-뫼어스는
다시 한번 평범한 길을 모두 피해간다! 독일 아마존 독자
발터 뫼어스 최고의 판타지 ‘차모니아’ 시리즈
『꿈꾸는 책들의 도시』 두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미로다!


『꿈꾸는 책들의 미로』는 현재 독일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인 발터 뫼어스 최고의 판타지 ‘차모니아 시리즈’ 여섯번째 소설이며, 시리즈 중 특히 부흐하임 3부작의 2부에 해당된다. 1부 『꿈꾸는 책들의 도시』 마지막에 화재 경종이 울리고 부흐하임이 화염에 휩싸인 지 이백 년 후의 이야기로,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다시 한번 부흐하임으로 여행을 떠나 꿈꾸는 책들의 미로라 불리는 어둠의 세계에서 겪은 흥미진진한 모험이 담겨 있다.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 안에는 특유의 유머와 천재적인 비유가 살아 숨쉬고, 재치 있는 언어유희로 고전작가들을 비틀어 인용하며, 거침없는 입담으로 ‘책벌레’들을 사로잡는다. 발터 뫼어스의 독창적인 일러스트와 이야기에 어울리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글씨체들은 책을 읽는 재미에 눈으로 보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특히 한국어판에는 ‘애너그램 찾아보기’를 부록으로 수록해, 작중에 인용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 이름이 뫼어스의 철자순서 바꾸기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흥미로운 모험소설의 줄거리에 이와 같은 지적 유희가 더해지며 한층 더 폭넓고 풍성한 독서경험을 선사한다.

잡지에 만화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중인 뫼어스는 가상의 대륙 차모니아를 무대로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상상을 펼쳐 보이는 이 시리즈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새로운 판타지의 도래”를 알린 차모니아 시리즈 첫 책 『캡틴 블루베어의 13과 2분의 1 인생』은 47주간 독일 베스트셀러에 머무르며 톨킨의 『반지의 제왕』보다 재미있는 책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책들의 세계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 역시 42주간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다. 루모가 잃어버린 은띠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변종 고양이 에코의 모험담인 『에코와 소름마법사』 역시 시리즈 애독자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한편 공룡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 캐릭터는 『엔젤과 크레테』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발터 뫼어스는 미텐메츠가 차모니아 언어로 쓴 소설을 번역하고 삽화를 그린 것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 매력적인 ‘미텐메츠-뫼어스 콤비’는 이후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이어 『꿈꾸는 책들의 미로』에서도 독자들을 이끌고 환상의 세계로 여행에 나선다. 『꿈꾸는 책들의 미로』는 출간 즉시 슈피겔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독일에서 25만 부가 판매되었다.

용감한 내 친구들이여,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얼마나 화려하게 부활했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은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여러분을 환영한다!

다시 한번 부흐하임으로 떠나는
미텐메츠의 두번째 모험!


부흐하임이 화재로 파괴된 지 이백 년. 그사이 이 대참사의 목격자인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차모니아 문학계의 위대한 작가로 부상해 린트부름 요새에서 성공에 한껏 취해 있다. 한번 쓴 글은 편집자에게 손도 대지 못하게 한 뒤 인쇄소에 넘겨버리고 두 번 다시 읽지 않으며 오로지 작품 ‘생산’에만 골몰해온 그는 이제 열광적인 숭배자들의 칭찬과 박수갈채에 중독되어 더는 ‘오름’이 찾아오지 않는 작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걱정이라면 점점 불어나는 몸무게와 습관적인 건강염려증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기분뿐. 그러던 어느 여름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더미처럼 쌓인 팬레터를 읽던 중 의문의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수수께끼 같은 문장이 쓰인 그 편지 때문에 미텐메츠는 다시 한번 여행길을 나서고, 기억 속 낭만적인 고서점 소도시가 아닌 화려하게 재건된 완전히 새로운 부흐하임과 마주한다.

『꿈꾸는 책들의 미로』는 미텐메츠가 서두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가 어떻게 해서 부흐하임으로 되돌아가 책들의 도시 지하묘지로 다시 한번 내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오랜 친구들과 새로운 적, 새로운 아군과 오랜 적수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익숙했던 부흐하임의 세계는 물론 전에 없던 새로운 명물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전작의 낯익은 등장인물뿐 아니라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 때로는 미텐메츠를 돕고 때로는 위기에 빠뜨리며 더욱 풍성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탁월한 상상력으로 다시금 빚어낸 이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서 모양의 거대한 책들이 기둥처럼 서 있고, 서점 아닌 서점에서 책 아닌 책을 팔고, 소시지나 아코디언 또는 피라미드 모양의 책, 성냥갑 안에 든 초소형 책뿐만 작가나 소설 주인공을 본떠 만든 꼭두각시인형이나 목각인형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작가의 이름이 붙은, 지하 심연으로 통하는 이른바 ‘부흐하임 주둥이’가 곳곳에 있고, 마시기만 하면 한 권의 책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 와인도 판매한다. 미텐메츠는 살아서 돌아다니는 역사신문 난쟁이를 만나 지난 이백 년간 부흐하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듣고, 특히 대화재 이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금지된 부흐하임에서 온갖 것을 피울 수 있는 ‘자욱연기소’에서 고향의 동족 시인 오비디우스를 만나 지금의 부흐하임에서는 ‘도서항해사’가 지하에서 책의 대양을 누비며 책 사냥꾼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비디우스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계기로 미텐메츠는 오랜 친구 키비처를 찾아가기로 한다. 전작에도 등장한 바 있는 고서점 주인 하흐메드 벤 키비처는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아이데트 족으로, 미텐메츠는 도시를 떠난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와 친구로 지내왔지만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 관계가 소원해졌고, 그의 우정 어린 충고를 오해해 독설을 퍼부은 후로 자그마치 백 년 동안 연락이 끊어진 참이다. 마침내 자신의 행동을 사과할 용기를 낸 미텐메츠는 고서점으로 키비처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키비처는 물론 오래전 도움을 받았던 슈렉스 이나제아와도 재회한다. 키비처와 이나제아는 미텐메츠를 부흐하임으로 오게 만든 편지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들려주고, 모든 의문이 풀리려는가 싶은 순간 키비처는 또다른 의문을 남기고 이나제아와 미텐메츠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그 다음날 이나제아는 키비처의 소원이었다며 미텐메츠를 ‘꿈꾸는 인형들의 극장’으로 안내한다.

폭발적인 상상력과 재미!
꿈꾸는 책들의 미로, 꿈꾸는 인형들의 극장


미텐메츠는 이나제아의 안내에 따라, 미로의 비밀스러운 강 마그모스와 독성 지대를 지나서 아주 특별한 극장인 ‘인형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찾게 된다. 극장의 외관부터 내부 모습과 ‘향기 오르간’을 이용한 냄새 연출까지 무엇 하나 평범한 것이 없는 그곳 무대에서는 바로 미텐메츠가 쓴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공연중이다. 미텐메츠를 더욱 놀라게 한 사실은 자신이 무대에 등장하는데다 이백 년 전 직집 겪은 일들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인형임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미텐메츠에게 이나제아는 부흐하임의 새로운 유행인 ‘인형중심주의’에 대해 설명해준다. 대화재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주민들은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했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인형과 인형극이 번창하면서 그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것을 넘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파괴된 부흐하임에서, 불행에서 움튼 아름다운 꽃이 바로 인형중심주의였다. 미텐메츠는 이나제아의 주선으로 부흐하임의 인형극의 가장 중심에 있으며 천재 감독으로 추앙받는 마에스트로 코로디아크와 대면할 기회를 얻는다. 마에스트로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가 초대한 지하 미로의 ‘보이지 않는 극장’에서 상연되는 ‘보이지 않는 연극’이란 대체 무엇일까. 미텐메츠는 미로에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를 이곳으로 이끈 ‘그림자 제왕이 돌아왔다’는 비밀스러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발터 뫼어스가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환상적인 세계, 그 놀라운 상상력과 재미있는 이야기 기술은 어떤 작가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독창적인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진기한 책들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의 대단원을 위해 그는 『꿈꾸는 책들의 성』을 집필하고 있다.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부흐하임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